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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부터 비가 그치지 않고 발코니를 부드럽게 두드린다. 나는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을 번지게 하는 것을 지켜본다. 바깥세상은 불안하게 느껴진다. 젖은 노면 위를 스치는 자동차들의 마찰음, 건물 모서리를 휘감아 도는 바람.
히터가 작동하며 콘도 안을 꾸준한 온기로 채운다. 나는 무릎 담요 아래로 다리를 집어넣는다. 처음에는 차가웠지만 서서히 따뜻해진다. 방 건너편,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그의 책상 스탠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오늘 밤 우리는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았다. 원래 그렇다. 떨어져 있지만, 외롭지는 않은 상태.
겨울이 오니 김 서린 창문 너머로 냉기가 스며들어 콘도가 더 좁게 느껴진다. 하지만 편안하다. 대화를 강요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정적이다.
나는 얼그레이 티를 한 모금 마신다. 진하고 차분한 맛. 찻김이 희미한 비 냄새와 섞인다. 어디선가 그의 의자가 낮게 삐걱거린다. 말을 걸어볼까 생각하지만, 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나는 비가 대신 말하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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